일본의 애니메이션 ‘아니메(ANIME)` 자료
일본의 애니메이션 ‘아니메(ANIME)` 자료
일본의 애니메이션 ‘아니메(ANIME)`
일본의 애니메이션 ‘아니메(ANIME)`에 대한 글입니다. 아니메파이널
ꊱ 서론
ꊲ 본론
1. 아니메의 역사와 발전 모습
2. 특징
3. 매체에 따른 분류
4. 작가로 보는 아니메
5. 작품으로 보는 아니메
6. 아니메의 영향, 파급효과
7. 일본 애니메이션의 성공요인
ꊳ 결론
② 1920~1950
칸토대지진으로 잠시 동안 아니메의 출발 행로는 주춤거렸지만 이내 애니메이션 제작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일본 문부성(文部省)의 애니메이션 제작이다. 1925년부터 어린이의 사회교육용 영화 제작에 힘을 기울였던 문부성은 시청각교육의 일환으로서 영화와 함께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야마모토(山本) 만화 제작소나 요코하마(橫浜) 시네마 상회가 당시 주로 문부성의 위탁을 받아서 작품을 만든 회사들이었는데, 요코하마 시네마 상회에서 일하던 작가 무라타 야스지(村田安司)의 재능은 매우 돋보였다. 무라타는 작품 속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물 캐릭터를 많이 등장시켜 인기를 누렸으며, 이전 수공업적인 촬영을 모터를 이용한 정확한 콤마촬영장치를 개발하여 애니메이션 제작의 합리화에도 큰 공헌을 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종이와 그림자가 주를 이루던 표현 방법에도 셀(cell)에 그림을 그리는 색다를 기법이 등장하게 된다. 1913년 미국의 엘 허드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개발한 이 제작법이 일본에서 쓰인 것은 1928년부터이며 쇼치쿠(松竹)영화사나 PCL(사진화학 연구소)의 JO 스튜디오 등은 많은 자본을 들여 셀 작품을 만들기도 하였다.
이듬해인 1929년은 일본 애니메이션 사에 있어서 중요한 한 해가 된다. 오후지 노부오에 의해 만들어진 ‘황금의 꽃’에서 처음으로 컬러가 실험되었기 때문이다. 두 가지 색 시네 컬러로 제작된 이 작품은 상영 때 흑백으로 보여 아쉬움을 남겼지만 애니메이션 컬러화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한편 일본이 제 2차 세계대전에 개입한 1930년대에는 일본 단편 애니메이션 역사에 오래도록 기억되는 두 인물이 나타나는데 마사오카 켄조(政岡憲三)와 세오 미츠요(瀨尾光世)가 그들이다.
마사오카 켄조는 1932년 일본 최초의 토키애니메이션 <힘과 여자의 세상 속 (1932)>를 제작하여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에 한 획을 긋는다. 특히 1943년에 제작한 <거미와 튤립>은 전시(戰時) 중의 작품이라고는 생각 할 수 없는 풍부한 영상 시정(詩情)으로 전쟁에 지쳐있는 일본인들에게 따스함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귀여운 무당벌레를 못된 거미가 유혹한다는 이야기 속에서 묘사된 자연 풍경은 당시 다른 작품보다 월등히 뛰어났기 때문에 ‘전쟁 중에 만들어진 것은 기적과 같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렇게 순수한 작품성을 추구하던 마사오카와는 반대로 정부와 연합하여 군사색 짙은 작품을 만든 작가들도 있었는데, 세오 미츠요도 그 중 한명이다. 그의 역작인 <모모타로(桃太郞)의 바다독수리(1941)>는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에 ‘최초의 장편’으로 기록된 작품이다. 일본의 하와이 진주만 공격을 선전하는 애니메이션으로 순수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전쟁의 악조건에서 발휘된 우수한 작품성은 이 장편을 걸작으로 평가받게 하였다. 또한 이후 50여 명의 대스탭이 참여하여 제작한 속편 <모모타로 바다의 신병(神兵)>도 도쿄 대공습이 있던 1945년 인기리에 상영되었는데, 테즈카 오사무가 학생시절 이 작품을 보고 내용과 기술의 놀라움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실화이다.
자료출처 : http://www.ALLReport.co.kr/search/Detail.asp?pk=16114245&sid=sanghyun7776&key=
[문서정보]
문서분량 : 17 Page
파일종류 : HWP 파일
자료제목 : 일본의 애니메이션 ‘아니메(ANIME)`
파일이름 : 일본의 애니메이션 ‘아니메(ANIME)`.hwp
키워드 : 일본의,애니메이션,‘아니메,ANIME,`
자료No(pk) : 16114245
일본의 애니메이션 ‘아니메(ANIME)`
일본의 애니메이션 ‘아니메(ANIME)`에 대한 글입니다. 아니메파이널
ꊱ 서론
ꊲ 본론
1. 아니메의 역사와 발전 모습
2. 특징
3. 매체에 따른 분류
4. 작가로 보는 아니메
5. 작품으로 보는 아니메
6. 아니메의 영향, 파급효과
7. 일본 애니메이션의 성공요인
ꊳ 결론
② 1920~1950
칸토대지진으로 잠시 동안 아니메의 출발 행로는 주춤거렸지만 이내 애니메이션 제작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일본 문부성(文部省)의 애니메이션 제작이다. 1925년부터 어린이의 사회교육용 영화 제작에 힘을 기울였던 문부성은 시청각교육의 일환으로서 영화와 함께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야마모토(山本) 만화 제작소나 요코하마(橫浜) 시네마 상회가 당시 주로 문부성의 위탁을 받아서 작품을 만든 회사들이었는데, 요코하마 시네마 상회에서 일하던 작가 무라타 야스지(村田安司)의 재능은 매우 돋보였다. 무라타는 작품 속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물 캐릭터를 많이 등장시켜 인기를 누렸으며, 이전 수공업적인 촬영을 모터를 이용한 정확한 콤마촬영장치를 개발하여 애니메이션 제작의 합리화에도 큰 공헌을 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종이와 그림자가 주를 이루던 표현 방법에도 셀(cell)에 그림을 그리는 색다를 기법이 등장하게 된다. 1913년 미국의 엘 허드라는 사람이 처음으로 개발한 이 제작법이 일본에서 쓰인 것은 1928년부터이며 쇼치쿠(松竹)영화사나 PCL(사진화학 연구소)의 JO 스튜디오 등은 많은 자본을 들여 셀 작품을 만들기도 하였다.
이듬해인 1929년은 일본 애니메이션 사에 있어서 중요한 한 해가 된다. 오후지 노부오에 의해 만들어진 ‘황금의 꽃’에서 처음으로 컬러가 실험되었기 때문이다. 두 가지 색 시네 컬러로 제작된 이 작품은 상영 때 흑백으로 보여 아쉬움을 남겼지만 애니메이션 컬러화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한편 일본이 제 2차 세계대전에 개입한 1930년대에는 일본 단편 애니메이션 역사에 오래도록 기억되는 두 인물이 나타나는데 마사오카 켄조(政岡憲三)와 세오 미츠요(瀨尾光世)가 그들이다.
마사오카 켄조는 1932년 일본 최초의 토키애니메이션 <힘과 여자의 세상 속 (1932)>를 제작하여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에 한 획을 긋는다. 특히 1943년에 제작한 <거미와 튤립>은 전시(戰時) 중의 작품이라고는 생각 할 수 없는 풍부한 영상 시정(詩情)으로 전쟁에 지쳐있는 일본인들에게 따스함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귀여운 무당벌레를 못된 거미가 유혹한다는 이야기 속에서 묘사된 자연 풍경은 당시 다른 작품보다 월등히 뛰어났기 때문에 ‘전쟁 중에 만들어진 것은 기적과 같다.’고 평가받고 있다.
이렇게 순수한 작품성을 추구하던 마사오카와는 반대로 정부와 연합하여 군사색 짙은 작품을 만든 작가들도 있었는데, 세오 미츠요도 그 중 한명이다. 그의 역작인 <모모타로(桃太郞)의 바다독수리(1941)>는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에 ‘최초의 장편’으로 기록된 작품이다. 일본의 하와이 진주만 공격을 선전하는 애니메이션으로 순수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전쟁의 악조건에서 발휘된 우수한 작품성은 이 장편을 걸작으로 평가받게 하였다. 또한 이후 50여 명의 대스탭이 참여하여 제작한 속편 <모모타로 바다의 신병(神兵)>도 도쿄 대공습이 있던 1945년 인기리에 상영되었는데, 테즈카 오사무가 학생시절 이 작품을 보고 내용과 기술의 놀라움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실화이다.
자료출처 : http://www.ALLReport.co.kr/search/Detail.asp?pk=16114245&sid=sanghyun7776&k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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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분량 : 17 Page
파일종류 : HWP 파일
자료제목 : 일본의 애니메이션 ‘아니메(ANIME)`
파일이름 : 일본의 애니메이션 ‘아니메(ANIME)`.hwp
키워드 : 일본의,애니메이션,‘아니메,ANIME,`
자료No(pk) : 16114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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